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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질문들 - 마거릿 애트우드 선집 2004-2021
저자 : 마거릿애트우드 ㅣ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ㅣ 역자 : 이재경

2022.10.12 ㅣ 712p ㅣ ISBN-13 : 979116812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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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에세이 선집.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여러 매체에 발표한 에세이 가운데 62편을 엄선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작품과 글쓰기를 비롯해 문학, 환경, 인권, 페미니즘 등 애트우드가 평생 헌신해온 주제들이 다양한 형식(강연, 서평, 논설, 추도사 등)의 글로 수록돼 있다.

《타오르는 질문들(Burning Questions)》이라는 제목에서 ‘타오르다’는 ‘급박하다’는 의미다. 애트우드는 21세기를 따라온 위기가 이전 시대의 것과 차원이 다르게 화급하다면서, 방대하고 세세한 역사적 지식, 풍성하고 내밀한 경험, 다채롭고 기발한 비유가 담긴 ‘이야기’들로 우리가 당면한 지구적 문제들에 답한다.

놓칠 수 없는 재미 하나는 어떻게 그런 예언과도 같은 소설을 썼는지(마법 구슬이라도 갖고 있는지), 왜 여성 화자로만 소설을 쓰는지(남성 화자로 쓰면 왜 여성 화자로 쓰지 않았는지), 아직 살아 있었는지(!!) 같은, 독자들의 집요하고 애정 어린 질문을 향한 애트우드 특유의 맵고 유머 있는 응답을 소상히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애트우드는 지난 20년간 청탁받은 원고의 90퍼센트를 거절하고도 매년 40편의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이 책엔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위대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압축돼 있다.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이자 독자가 21세기를 돌파하며 세계에 던진 ‘타오르는(급박한) 질문들’과 그 대답들을 지금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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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서문

1부/ 2004~2009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이언스 로맨스
《얼어붙은 시간》
《저녁에서 새벽까지》
폴로니아
누군가의 딸
다섯 번의 워드호드 방문
《에코 메이커》
습지
생명의 나무, 죽음의 나무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빨간 머리 앤》
앨리스 먼로: 짧은 평론 1
오래된 균형
스크루지
글 쓰는 삶

2부/ 2010~2013 예술은 우리의 본성

작가가 정치적 대리인? 정말?
문학과 환경
앨리스 먼로
《선물》
《브링 업 더 보디스》
레이철 카슨 기념일
미래 시장
내가 《미친 아담》을 쓴 이유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
《닥터 슬립》
도리스 레싱
어떻게 세상을 바꾸죠?

3부/ 2014~2016 무엇이 주(主)가 되는가

번역의 땅
아름다움에 대하여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여름
카프카
미래 도서관
《시녀 이야기》를 회고하며
우리는 이중으로 부자유하다
단추냐 리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브리엘 루아
셰익스피어와 나
마리클레르 블레
《모피 여왕의 키스》
백척간두의 우리

4부/ 2017~2019 파국의 시대

트럼프 치하의 예술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인가?
우리는 어슐러 르 귄을 잃었다, 우리에게 그녀가 가장 필요할 때
세 장의 타로 카드
노예 국가?
《오릭스와 크레이크》
안녕, 지구인들! 인권, 인권 하는데 그게 다 뭐죠?
《돈을 다시 생각한다》
《불의 기억》
진실을. 말하라.

5부/ 2020~2021 생각과 기억

검역의 시대
《동등한 우리》
《갈라놓을 수 없는》
《우리들》
《증언들》 집필에 대하여
《새들을 머리맡에》
《영구운동》과 《젠틀맨 데스》
시간의 흐름에 잡혀
〈빅 사이언스〉
배리 로페즈
바다 3부작

감사의 말
수록 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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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왜 이런 제목인가? 21세기까지 우리를 따라온 문제들은 이제 화급을 다투는 문제들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시대가 당대의 위기를 두고 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 시대의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지구. 세상 자체가 정말로 타오르고 있는가? 세상에 불을 질러온 것이 우리인가? 그럼 우리가 불을 끌 수도 있을까? 그리고 지극히 불평등한 부의 분배. 부의 양극화가 북미뿐 아니라 사실상 전 세계에서 격화되고 있다. 이렇게 꼭대기만 무거운 불안정한 구조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참다못한 하위 99퍼센트가 마침내 상징적 바스티유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서문」중에서

작가들과 글쓰기는? 그들―우리들―은 이른바 사회 친화적인 말들, 용인된 상투어들만 늘어놓는 스피커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에게 뭔가 다른 역할이 있을까? 만약 그게 남들이 못마땅해하는 역할이라면 우리의 책들은 불태워질까? 그런 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책에 있어서 본질적 신성불가침이란 없다. 이것들은 지난 20년 동안 내가 남들에게 받았던, 그리고 스스로 던졌던 타오르는 질문들 중 일부다. 이 책에 내 답변들이 있다. 아니, 답변의 시도들이라고 해야 할까? 에세이란 결국 그런 거니까. 시도. 노력.
-「서문」중에서

마술사들이 나와서 마술의 원리를 알려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 있으시죠? 저는 그거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마술 쇼에 왜 가겠어요? 현혹당하고, 속고, 놀라기 위해서 가는 거잖아요.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처럼요. 소설 속의 모든 일을 진짜로 믿을 준비를 하고서. 적어도 내가 표지와 표지 사이에 있을 때만이라도. 사람들은 마술의 원리 따위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 환상이 깨지니까요. 가끔 청중 가운데서 “나 그거 어떻게 한 건지 알아!”라고 외치는 영리한 아이가 나오곤 합니다. 어떤 때는 잘 생각해보면 방법이 보이기도 해요. (저야 생각해도 모르지만요.) 요점은, 설사 알아냈다 해서, 또는 알 것 같다 해서, 그걸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무엇’을 아는 것과 ‘어떻게’를 아는 것은 별개입니다. ‘어떻게’는 다년간의 연습과 실패에서 옵니다. ‘어떻게’는 모자가 낳을 달걀을 수없이 떨어뜨리고, 제1장을 스무 번째 구겨서 휴지통에다 던진 끝에 실현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도 《보물섬》을 마법처럼 불러내기 전에 다 쓴 원고를 세 번이나 불태웠습니다. 그때 소각된 소설들은 그가 떨어뜨린 세 개의 달걀이었습니다. 하지만 깨진 달걀이 헛된 낭비는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을 떨어뜨린 덕분에 다음 달걀을 감쪽같이 나타나게 하는 방법을 익힌 거니까요.
-「다섯 번의 워드호드 방문」중에서

그런데 잠깐만요. 바다 위뿐 아니라 땅 아래에도 얼음이 있습니다. 툰드라 밑에 있는 영구동토층이요. 툰드라에는 얼음이 엄청 많고, 세상에는 툰드라도 엄청 많습니다. 영구동토층마저 녹기 시작하면, 수천 년 된 유기물질인 툰드라 토탄이 분해되면서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가 방출됩니다. 대기 온도는 올라가고, 산소 농도는 떨어지겠죠. 그러면 우리 모두가 질식하고 쪄 죽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사람들은 때로 제가 좀 지나치다고 합니다. “저기, 마거릿.” 그들이 말합니다. “그런 말은 좀 너무하지 않아요?” 벌거벗은 황제에게 벗었다고 말하는 일이 아기 고양이를 밟아 뭉개는 짓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몽유병자를 꿈결에서 깨우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누구나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아무 일도 없고, 세상은 안전하며, 우린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아무것도 아무의 잘못도 아니야. 무엇보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해요. 아무 걱정 없이, 또는 라이프스타일을 조금도 바꿀 필요 없이, 우리 좋을 대로 계속 지금처럼 살아도 무방해. 그래도 나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저도 그런 말을 듣고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지금은 좀 가혹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단도직입이 아닌 방법으로는 표현할 도리가 없거든요.
-「습지」중에서

이쯤에서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라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합니다. 하지만 빌딩에 불이 났을 때는 경보를 울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경보를 울립시다. 그리고 누군가 불 끄는 데 손을 보태기를 희망합시다. 그런 점에서 이 방에 있는 모두는 경보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길을 본 사람들입니다.
-「습지」중에서

제 아버지인 칼 애트우드 박사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초에 당시 명칭으로 국토수림부에 소속된 곤충학자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북부를 수없이 여행했고, 도로를 달리다가 문득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이렇게 외치곤 했습니다. “감염이야!” 우리는 방수포와 도끼를 꺼내 듭니다. 아버지는 방수포를 해충이 들끓는 나무 밑에 깐 다음 도낏자루로 나무 몸통을 두들겼습니다. 그러면 나뭇가지들에서 해충이(대개는 애벌레들이었어요) 비처럼 쏟아져 내렸어요. 벌레를 모으는 일은 어린 우리들 몫이었죠. 일이 끝나면 우리는 여행을 재개했습니다. 다음번 감염이 또다시 우리를 끼이익 멈춰 세울 때까지 말이죠. 다른 가족들은 아이스크림콘을 사기 위해 멈췄지만 우리 가족은 해충을 잡으러 멈췄습니다.
-「생명의 나무, 죽음의 나무」중에서

아버지는 1944년까지 퀘벡 연구실을 운영하다가 수세인트마리로 옮겨서 거기에 곤충 연구실을 세웠고, 1946년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임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어린 시절의 일부를, 정확히 말하면 1940년대 후반의 매 겨울을, 낡은 동물학과 건물에서 병에 담긴 눈알들과 치명적으로 하얀 아프리카 바퀴벌레를 감상하며 보냈습니다. 그때는 이런 것들이 동물학의 상징이었어요. 제가 일곱 살 때 처음 쓴 소설의 주인공이 개미였던 건 우연이 아니었죠.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애벌레와 번데기에게서 갈등 구조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난히 맛있는 벌레를 포획하고, 물어뜯고, 죽여서 개미굴로 끌고 가는 나름 해피 엔딩 스토리였어요. 이후의 소설들도 이렇게 낙관적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는 초창기 환경운동가였습니다. 완전 초창기였죠. 아버지는 감염을 막으려면 살충제를 일시에 광범위하게 살포해야 한다는 당시의 믿음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의심을 품는 건 자신에게 미치광이 낙인을 찍는 것과 다름없었어요. 하지만 많은 일들이 그렇듯 시간은 아버지가 옳았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생명의 나무, 죽음의 나무」중에서

‘정치적 대리인으로서의 작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려운 일이다. 나는 작가들을 딱히 정치적 대리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네북이라면 모를까. 정치적 대리인은 의도적으로 선택한 행위이자 본질적으로 대단히 정치적인 행위를 암시하는데, 모든 작가가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많은 작가들이 정치에 있어서 벌거벗은 황제를 본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황제의 나체를 언급한다. 주제넘고 싶어서도, 찬물을 끼얹고 싶어서도 아니다. 단지 그들 눈에 옷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고함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한다. 위험한 종류의 순진함일 수는 있지만 흔한 일이다. 소설 《악마의 시》의 저자에게 파트와의 사형 언도가 내려졌을 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저자 살만 루슈디 본인이었다. 루슈디는 그저 자신이 무슬림 이민자들을 문학적 지도에 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정치적 대리인? 정말?」중에서

그럼 작가에게는 책임이 없나요? 설교자들이 묻습니다. 작가라면 선하고 가치 있는 일로 본분을 다해야 하지 않나요? 그런 다음 설교자는 작가에게 요구되는 선하고 가치 있는 일들을 줄줄이 읊어댑니다. 생전에 커트 보니것은 학생들의 질의 편지들에 이런 고무도장을 찍었습니다. “네가 써라, 에세이.” 이 문장으로 티셔츠를 찍으면 대박 날 것 같아요. 작가들만 입는 티셔츠요. 단어만 바꾸면 됩니다. “네가 써라, 책.” 이게 더 좋겠네요. “네가 써라, 가치 있는 책.”
-「문학과 환경」중에서

레이철 카슨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말들을 했을지 궁금하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은 베트남 정글들을 말려 죽일 독성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태평양 너머로 무지막지하게 실어 날랐다. 카슨이 이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인류가 파멸의 낭떠러지로 향한다고 경고하지 않았을까? 이때 파괴된 정글들은 여태 회복되지 않았고, 당시 고엽제에 노출됐던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카슨의 경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에이전트 오렌지의 해양 유출에 따른 결과를 상상해보라. 바다 남조류의 죽음은 곧 지구적 재앙이다. 지구 대기권 산소량의 50~80퍼센트를 해조류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2010년 멕시코만에서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습한답시고 화학 분산제를 살포했다. 이때 카슨이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의심의 여지없이 말렸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많은 전문가들이 말렸지만 미국 정부와 영국 석유 회사는 이를 강행했다. 빠르게 녹고 있는 북극 빙하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을까? 그레이트베어 우림을 통과해 태평양에 이르는 송유관을 건설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레이철 카슨 기념일」중에서

제가 1960년대에 처음 청중과 질의응답 세션을 갖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언제 자살할 생각이세요?” 저는 여성 시인이었고,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망령이 아직 떠돌던 시대였고 자살이 필수로 여겨졌습니다. 여권운동 초기에는 이런 질문이 왔습니다. “남자들을 증오하세요?” 1980년대가 되자 사람들이 글쓰기 과정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이후에는 《시녀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여성의 신체를 관리하는 정책에 대해 제가 정곡을 좀 세게 찌른 모양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질문이 들어옵니다. “희망이 있나요?” 제 대답은 “언제나 희망은 있죠”입니다. 희망은 내장형입니다. 그리고 잘 옮습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더 많아집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좀비의 진정한 의미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 다만 희망을 뺀 우리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에게 희망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미래 시장」중에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대자연에게 우리가 필요할까요? 아뇨. 우리가 지구를 생명 전체에 부적당한 곳으로 만드는 게 빠를까요, 인간만 살지 못할 곳으로 만드는 게 빠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적어도 일부 곤충, 규조류, 혐기성 미생물, 심해 오징어에는 못 당합니다. 어쩌면 자연은 우리의 멸종을 기다릴 겁니다. 그럼 우리에겐 자연이 필요한가요? 결단코 필요합니다. 인간이 호흡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개발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화학과 물리학은 흥정이란 게 없습니다. 항상 장부를 착착 맞춥니다. 열이 증가해서 에너지가 발생했다면 거세진 바람과 높아진 파도의 형태로 방출되어야 하고, 증발로 올라가는 게 있으면 폭우와 눈보라로 내려오는 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지구는 이제 기후 변화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2010년 환경운동가 빌 매키번이 《우주의 오아시스 지구》에서 경고한 덜 친절하고 더 불안정한 새로운 행성이 이미 우리 코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거기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사는 규모를 줄여서, 우리가 촉발한 맹렬한 소모의 과정을 되돌리거나 최소한 중단해야겠죠. 아니면 현대사회의 붕괴에 뒤따를 비참함을 감당하든지요.
-「어떻게 세상을 바꾸죠?」중에서

번역가의 임무는 정확한, 또는 충분히 정확한 텍스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번역한 언어로도 가독성 있는 텍스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아가 흥미진진하고, 웃기고, 가슴 아픈 곳들을 똑같이 흥미진진하고, 웃기고, 가슴 아프게 옮기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쌍두 공중 곡예는 누구의 두뇌로도 벅찬 일입니다. 따라서 글이 써지지 않는 날 작가가 위안을 얻는 방법은 “적어도 나는 스코틀랜드의 메리는 아니잖아!” 말고도 또 있습니다. “적어도 나는 내 빌어먹을 책들을 번역할 필요가 없잖아!”

저는 제가 때로 번역가들에게 악몽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저의 빌어먹을 책들을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 두 배로 감사합니다. 때로는 뺄 게요. 저는 언제나 번역가들에게 악몽입니다. 저는 (번역이 불가능한) 말장난과 (번역하기 난감한) 농담을 즐겨 쓰고, 특히 유전자조작 생물과 상상의 소비재 영역에서 신조어를 잔뜩 만들어냅니다. 제가 살인에만 역점을 두면서 의젓한 표준영어만 쓴다면 번역가에게 얼마나 좋을까요? 플롯 위주의 책들이 번역하기에는 가장 쉽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역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뼛속까지 미국적인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면 그의 로스엔젤레스가 이상하게도 (예컨대) 매그레 경감이 사는 파리의 우범지대와 비슷해지거든요. 파리에는 비가 자주 온다는 것만 빼면요.
-「번역의 땅」중에서

많은 분들이 물어보거나 궁금해 합니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저도 지칠 때까지 대답합니다. 물론이죠. 상상하기 힘드시겠지만 저도 한때는 10대 소녀였고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도 한때는 기차역 같은 곳에 많이 출몰하는 더듬이들과 노출 아티스트들의 잠재적 표적이었습니다. 다만 운이 좋아서 실제 강간범은 피했고, 술집에서 제 음료에 데이트 강간 약물을 탄 작자도 없었습니다. (그런 약물은 발명되기 전이었어요.) 제가 처음부터 오늘날 여러분이 보시는 존경받는 원로나 무서운 마녀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제게 처음부터 어려울 때마다 저를 도와줄 도깨비 부대와 요괴 부대가 129만 트위터 팔로어의 형태로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물론 그중 일부는 로봇이란 것을 압니다. 그 로봇 중 일부가 제게 제 거시기가 그립다는 둥, 거시기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는 둥의 트윗을 보내거든요. 또한 그런 초대에는 트윗을 보낸 당사자일 리 만무한 젊은 숙녀의 헐벗은 사진이 딸려오곤 해요.
-「백척간두의 우리」중에서

많은 분들이 물어보거나 궁금해 합니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저도 지칠 때까지 대답합니다. 물론이죠. 상상하기 힘드시겠지만 저도 한때는 10대 소녀였고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도 한때는 기차역 같은 곳에 많이 출몰하는 더듬이들과 노출 아티스트들의 잠재적 표적이었습니다. 다만 운이 좋아서 실제 강간범은 피했고, 술집에서 제 음료에 데이트 강간 약물을 탄 작자도 없었습니다. (그런 약물은 발명되기 전이었어요.) 제가 처음부터 오늘날 여러분이 보시는 존경받는 원로나 무서운 마녀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제게 처음부터 어려울 때마다 저를 도와줄 도깨비 부대와 요괴 부대가 129만 트위터 팔로어의 형태로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물론 그중 일부는 로봇이란 것을 압니다. 그 로봇 중 일부가 제게 제 거시기가 그립다는 둥, 거시기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는 둥의 트윗을 보내거든요. 또한 그런 초대에는 트윗을 보낸 당사자일 리 만무한 젊은 숙녀의 헐벗은 사진이 딸려오곤 해요.
-「백척간두의 우리」중에서

“《오릭스와 크레이크》?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막 끝낸 소설의 제목을 말하자 출판사 담당자는 이렇게 물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소설 시작 시점에서 이미 멸종한 두 생물체의 이름이에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이름이기도 해요.”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이미 죽었다면서요.” 출판사가 말했다. “그게 포인트예요.” 내가 말했다. “또는 여러 포인트 중 하나예요.” (내가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포인트는 이 제목이 연못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와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세 번씩 발음해보기 바란다. 오릭스, 오릭스, 오릭스. 크레이크, 크레이크, 크레이크. 안 그런가?) 담당자가 여전히 확신 없는 표정을 짓기에 나는 R, Y, X, K는 마법의 글자들이며, 이들을 모두 포함한 제목이 영험하지 않을 리 없다고 말했다. 그들이 내 말을 믿은 걸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오릭스와 크레이크》가 해당 소설의 제목으로 남아 있다.
-「《오릭스와 크레이크》」중에서

친애하는 지구인 여러분, 여성은 선천적으로 더 우매하지 않습니다. 참을성이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덜 이성적이거나 더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성이 격정 범죄와 자살을 행하는 경우는 남성보다 훨씬 적습니다. 두 가지는 모두 과도한 감정주의에 뿌리를 둡니다. 남자들이 눈물을 덜 흘리는 건 사실입니다. 대신 그들은 피를 더 많이 흘리죠. 따라서 누가 더 습한지를 따져보면 단연 남자가 더 습해요.

적어도 우리 마슈프직스 행성에서는 그렇게 말합니다. 지구 남성들은 계통발생에서 임신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수렵채집 시대에 남성들이 가젤을 추격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가젤이 추격당해줄 때 얘기지만요. 임신해서 무거워진 몸은 전력 질주에 적합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식료 대부분은 여성들의 식물 재배와 채집 기술이 제공했습니다. 가젤이 날이면 날마다 잡히는 건 아니니까요. 이것이 남자들이 벗은 양말을 줍지 않는 이유입니다. 움직이는 동물들만 알아차리도록 진화한 건지 도무지 바닥에 벗어놓은 양말을 보지 못해요. 반면 여자들은 카펫 무늬와 양말을 쉽게 분간합니다. 버섯 채집에 유리하게 진화했고, 벗어 던진 양말은 버섯과 형태 면에서, 때로는 질감과 향기 면에서도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죠. 적어도 이것이 우리 마슈프직스 행성인의 결론입니다.
-「안녕, 지구인들! 인권, 인권 하는데 그게 다 뭐죠?」중에서

사실 해결할 대형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우선, 지구의 온도와 화학적 구성을 조절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여러분 모두 플라스틱 똥이 되고 말 겁니다. 바다가 죽고 여러분은 숨을 쉴 수 없게 되겠죠. 그러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와는 영원한 안녕입니다. 우리도 여러분의 멸종이 마음 아파요. 여러분에게도 좋은 점이 있거든요. 모차르트는 정말 우리 취향이었어요. 물론 우리야 악보를 저장해서 직접 연주하면 그만이지만요. 꼭 망할 필요는 없잖아요.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곳에서 제게 주어진 시간은 끝났습니다. 제 미션은 완수했습니다. 지금쯤 짐작하셨겠지만 제 미션이 단지 탐사만은 아니었어요. 우리는 여러분이 무사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손가락이 있다면 행운의 표시도 해드렸을 텐데, 아쉽네요. 이제 우리는 먼 우주에서 여러분이 정말로 심각하게 깽판 칠 경우에 대비해 모종의 준비에 들어갈 겁니다. 무슨 준비일지는 확실치 않아요. 광선총이 필요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여러분 스스로 좋은 대책을 강구하길 희망합니다. 어쨌거나 여러분은 꽤 똑똑하잖아요. 이제는 제가 이 작고 늙은 여자 인간의 변장을 벗어버리고, 백열광을 뿜으며 위족 촉수들을 있는 대로 뻗치고 성층권으로 솟아올라 이곳과는 장르 자체가 다른 멀고 먼 은하의 어느 행성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지구인이여, 경거망동하지 하세요! 있을 때 잘하세요! 전체주의를 피해요! 고양이 동영상을 즐겨요! 인권선언문도 읽어봐요! 케일을 많이 먹어요! 일회용 플라스틱은 그만 좀 쓰고요!
-「안녕, 지구인들! 인권, 인권 하는데 그게 다 뭐죠?」중에서

그래서 매시 강연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단히 감사하지만 저는 그때 머리를 감을 예정이라서요.”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다음 해에도 감을 예정이고, 그다음 해에도 감을 예정이며, 그다음다음 해에도…….” 부연하자면 이 머리 감기 은유는 1950년대에 유행했던 것으로, 원치 않는 데이트 신청을 피할 때 쓰던 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매시 강연을 맡아달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머리를 감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운명이 개입했다. 매시 강연은 전통적으로 아난시 출판사가 발행했다. 아난시는 작은 문학 출판사로 시작했는데, 1960년대에 나도 창립 자금을 보탰고, 그 뒤에는 이사회 일원이자 편집자로 활동했고, 더 나중에는 지속적 재정 지원의 일환으로 거기서 문학비평서 《생존: 캐나다 문학의 주제별 안내서》를 내기도 했다. 이제 아난시는 어엿한 중견 출판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2002년에 죽다 살아났다. 캐나다의 대형 출판사 스토다트에 인수되고 얼마 후 스토다트가 파산하는 바람에 모회사와 함께 아난시도 망각 속으로 사라질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갑자기 스콧 그리핀이라는 남자가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어릴 때 입던 슈퍼맨 수트를 간신히 벗더니 아난시를 사들였다. 그는 빈사 상태의 아난시를 절망의 수렁에서 건져내 물가로 데려갔고, 신중하게 현금을 주입해 꺼져가던 생명의 숨을 다시 불어 넣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매시 강연의 초청위원회가 고심 끝에 강연 시리즈를 더 규모 있고 더 자금력 있는 출판사에 양도하기로 결정한 후였다.

많은 사람들이 호곡했고, 장송곡은 참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사마귀 제거 묘약, 저주 또는 부적, 달에 비는 주문? 독사가 든 바구니?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초자연적인 힘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책상에 앉았고, 약이 바싹 올랐을 때의 빨간 머리 앤에 빙의해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협박 편지를 썼다. 만약 여러분이 아난시 출판사에게서 매시 강연을 빼앗아 간다면 앞으로 내가 매시 강연을 하는 일은 절대, 절대, 절대 없을 거예요, 절대로! (발 구르기 쾅쾅.) 아난시는 매시 강연의 출판사로 남았다. 내 협박이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는 뻔했고, 그 일이 일어났다.
-「《돈을 다시 생각한다》」중에서

그레임은 삶의 마지막까지 새를 보는 즐거움을 놓지 않았다. 생애 마지막 해까지도, 비록 혈관성 치매가 진행되어 더는 읽지도 쓰지도 못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새들의 활기찬 삶을 지켜보았다. 우리 뒤뜰의 모이통과 물통에 날아드는 새라고는 참새와 울새, 찌르레기뿐이었고 간간이 비둘기가 찾아올 따름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모든 새가 주목받을 가치가 있었다. “이제는 저 새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어느 날 그가 우리의 친구에게 말했다. “하지만 뭐, 새들도 내 이름을 모르니까.”
-「《새들을 머리맡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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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보영, 시인 유진목, 에세이스트 정혜윤, 문학비평가 오혜진 추천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증언들》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2022년 최신작
2004년에서 2021년까지 18년간 발표한 에세이 가운데 62편 수록

마거릿 애트우드가 21세기를 돌파하며 던진 타오르는 질문들과 대답들
“이 책에 내 답변들이 있다.”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증언들》의 작가, 소설가이자 시인·에세이스트·문학비평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에세이 선집이 출간됐다. 2004년부터 2021년까지 발표한 에세이 가운데 62편을 엄선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작품과 글쓰기를 비롯해 문학·환경·인권·페미니즘 등 애트우드가 평생 헌신해온 주제들이 다양한 형식(강연, 서문, 서평, 논설, 추도사 등)의 글로 수록돼 있다.

“타오르는 질문들(Burning Questions)”이라는 제목에서 ‘타오르다’는 ‘급박하다’의 의미다. 애트우드는 서문에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정치적·문화적 흐름을 자기 삶과 교차해 회고한 뒤, 21세기의 위기가 이전 시대의 문제와 차원이 다르게 화급하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방대하고 세세한 역사적 지식, 풍성하고 내밀한 경험, 다채롭고 기발한 비유가 담긴 ‘이야기’들로 우리가 당면한 지구적 문제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 왜 이런 제목인가? 21세기까지 우리를 따라온 문제들은 이제 화급을 다투는 문제들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시대가 당대의 위기를 두고 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확실히 우리 시대의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지구. 세상 자체가 정말로 타오르고 있는가? 세상에 불을 질러온 것이 우리인가? 그럼 우리가 불을 끌 수도 있을까? (…) 이것들은 지난 20년 동안 내가 남들에게 받았던, 그리고 스스로 던졌던 타오르는 질문들 중 일부다. 이 책에 내 답변들이 있다. (16~17쪽)

책의 구성

책은 연대순으로 구성돼 있다. 1부는 2004년부터 2009년,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에 대한 테러 공격과 이라크전쟁, 미국발 금융 위기가 일어난 시기이다. 2부는 2010년부터 2013년, 오바마 정부 때다. 기후 위기 이슈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애트우드의 반려자 소설가 그레임 깁슨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3부는 2014년부터 2016년, <시녀 이야기>와 <그레이스>가 시리즈물로 제작되고 애트우드가 《증언들》 집필에 들어간 시기이다. 2016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4부는 2017년부터 2019년, 트럼프 취임 이후 반(反)트럼프 ‘여성 행진’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시녀 이야기》가 재조명된 시기이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고발과 문화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증언들》이 출간됐고, 《증언들》 출판 발표회 다음 날 쓰러진 그레임 깁슨이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애트우드는 북 투어를 이어 나갔다. 5부는 2020년에서 2021년, 미국이 다시 대선을 치른 시점. 팬데믹, 전체주의, 기후 변화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번역 불가한 말장난과 농담을 즐기는 자칭 ‘사변소설’ 작가
“위트와 넉살, 다채로운 이야기들”

- 작가는 일단 책을 출판하면 그걸 왜 썼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마치 내가 재떨이라도 훔친 것처럼 말이다. 나는 2부의 에세이 중 하나를 온전히 내 범죄를 해명하는 데 바쳤다. (18쪽)

- 사람들이 “어떻게 쓰세요?”라고 물으면 저는 “연필로요”라고 답합니다. 또는 그와 비슷하게 퉁명스러운 대답을 합니다. “왜 쓰세요?”라고 물으면 “태양은 왜 빛나는데요?”라고 해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치과 의사에게는 왜 남들 입속을 뒤지는지 묻지 않잖아요”라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얼버무리는 이유를 설명할게요. 아뇨, 설명하지 맙시다. 대신 실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77쪽)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 하나는 어떻게 그런 예언과도 같은 소설을 썼는지(마법의 수정 구슬이라도 가졌는지), 왜 여성 화자로만 소설을 쓰는지(남성 화자로 쓰면 왜 이번엔 여성 화자로 쓰지 않았는지), 아직까지 살아 있었는지(!!) 같은 독자들의 집요하고 애정 어린 질문을 향한 애트우드 특유의 맵고 유머 있는 응답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애트우드는 《시녀 이야기》 《증언들》 《오릭스와 크레이크》 같은 자신의 대표작과 글쓰기에 관한 소회를 나누고, 독자들의 반복적인 요구와 의문에 대해 재치 있는 비유로 답한다.

- 저는 언제나 번역가들에게 악몽입니다. 저는 (번역 불가능한) 말장난과 (번역하기 난감한) 농담을 즐겨 쓰고, 특히 유전자조작 생물과 상상의 소비재 영역에서 신조어를 잔뜩 만들어냅니다. 제가 살인에만 역점을 두면서 의젓한 표준영어만 쓴다면 번역가에게 얼마나 좋을까요? (341쪽)

- 내게는 수정 구슬이 없다. 내게 정말로 미래 예측 능력이 있다면 내가 이미 오래전에 주식시장을 장악하지 않았을까? (585쪽)

- 구급대원 1: 여기가 누구 집인지 알아?
구급대원 2: 몰라. 누구 집인데?
구급대원 1: 마거릿 애트우드 집이야!
구급대원 2: 마거릿 애트우드가 아직 살아 있어?! (382쪽)

문학, 환경, 인권, 페미니즘… ‘애트우드 유니버스’를 구축한 주제들
“불이 났을 때는 경보를 울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타오르는 질문들》은 애트우드가 그간 작품에서 펼친 세계가 무엇을 자양분 삼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린 시절 환경운동가이자 곤충학자인 아버지와 퀘벡의 숲에서 보낸 일, 유명 작가가 되기까지 다양한 거처와 직업을 거치며 생계를 꾸린 경험, 밭을 일구고 탐조를 하며 보내는 여가 등 그가 어떤 시간을 경유해 그만의 세계를 구축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글에서 드러나는 문학과 영미 문학사에 관한 깊은 지식과 독창적인 해석, 변방의 작가, 특히 여성 작가와 자국 작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흥미롭다. 이 책에서 문학작품과 작가들에 관한 서평·서문·강연 형식의 글들은 탁월한 작법 이론과 문학비평의 전범이 될 만하다.

- ‘무엇’을 아는 것과 ‘어떻게’를 아는 것은 별개입니다. ‘어떻게’는 다년간의 연습과 실패에서 옵니다. ‘어떻게’는 모자가 낳을 달걀을 수없이 떨어뜨리고, 제1장을 스무 번째 구겨서 휴지통에다 던진 끝에 실현됩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도 《보물섬》을 마법처럼 불러내기 전에 다 쓴 원고를 세 번이나 불태웠습니다. 그때 소각된 소설들은 그가 떨어뜨린 세 개의 달걀이었습니다. 하지만 깨진 달걀이 헛된 낭비는 아니었습니다. (78쪽)

- 생전에 커트 보니것은 학생들의 질의 편지들에 이런 고무도장을 찍었습니다. “네가 써라, 에세이.” 이 문장으로 티셔츠를 찍으면 대박 날 것 같아요. 작가들만 입는 티셔츠요. 단어만 바꾸면 됩니다. “네가 써라, 책.” 이게 더 좋겠네요. “네가 써라, 가치 있는 책.” (221쪽)

애트우드는 ‘페미니즘 문학’을 따옴표 치고 거론하기 이전부터 페미니즘 소설을 쓴 작가다. 수십 년 전에 발표한 소설이 지금까지 임신중지권 시위 같은 여성운동에서 강력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애트우드는 2018년에 발표한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인가?”라는 글에서 자신이 ‘착한 페미니스트’들에게 비난받는 ‘나쁜 페미니스트’라면서, 미투 운동에서 돌아봐야 할 지점은 망가진 사법제도를 고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안녕, 지구인들! 인권, 인권 하는데 그게 다 뭐죠?”라는 글에서는 자신을 장르 자체가 다른 먼 행성에서 작고 늙은 여자(애트우드)의 변장을 하고 온 외계인이라고 설정한 뒤 불평등, 민주주의, 환경, 인권 등의 문제를 통렬하고 또 재미있게 짚어낸다.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간단치 않은 주제들을 흥미롭게 넘나드는 애트우드의 입담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많은 분들이 물어보거나 궁금해합니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저도 지칠 때까지 대답합니다. 물론이죠. 상상하기 힘드시겠지만 저도 한때는 10대 소녀였고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도 한때는 기차역 같은 곳에 많이 출몰하는 더듬이들과 노출 아티스트들의 잠재적 표적이었습니다. (…) 제가 처음부터 오늘날 여러분이 보시는 존경받는 원로나 무서운 마녀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제게 처음부터 어려울 때마다 저를 도와줄 도깨비 부대와 요괴 부대가 129만 트위터 팔로어의 형태로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482쪽)

- 사실 해결할 대형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우선, 지구의 온도와 화학적 구성을 조절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여러분 모두 플라스틱 똥이 되고 말 겁니다. 바다가 죽고 여러분은 숨을 쉴 수 없게 되겠죠. 그러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와는 영원한 안녕입니다. 우리도 여러분의 멸종이 마음 아파요. 여러분에게도 좋은 점이 있거든요. 모차르트는 정말 우리 취향이었어요. 물론 우리야 악보를 저장해서 직접 연주하면 그만이지만요. 꼭 망할 필요는 없잖아요.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 지구인이여, 경거망동하지 하세요! 있을 때 잘하세요! 전체주의를 피해요! 고양이 동영상을 즐겨요! 인권선언문도 읽어봐요! 케일을 많이 먹어요! 일회용 플라스틱은 그만 좀 쓰고요! (578~579쪽)

무엇보다 이 책에서 애트우드는 불이 난 세상에 ‘경보를 울리는’ 환경운동가의 면모를 보인다. 수록된 글 가운데 초기작인 “습지”(2006)와 “생명의 나무, 죽음의 나무”(2007)를 시작으로 기후 변화에 관한 염려, 환경 문제에 관한 지극한 관심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 이 글들이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는 근래에야 도래한 것 같은 기후 정의 이슈가 이미 십수 년 전에 애트우드의 곡진한 언어로 세상에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쉽게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부터 애트우드는 이에 관해 꾸준히 글을 썼다.

- 제게는 오래전부터 기사를 신문 잡지에서 스크랩하거나 인터넷에서 다운받는 습관이 있습니다. 2003년에 나온 제 소설 《오릭스와 크레이크》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져 뉴욕이 물에 잠기고,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해 뉴잉글랜드의 단풍 드는 가을이 사라져버린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소설을 쓸 당시 저는 이런 현상들을 입증하는 기사들을 잔뜩 모았습니다. 혹시 누가 저를 헛소리꾼으로 욕할 경우에 대비해서요. 그때만 해도 그런 기사들을 과학 잡지나 신문의 과학 지면에서나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부러 찾아봐야 했죠. (113쪽)

- 이쯤에서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라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합니다. 하지만 빌딩에 불이 났을 때는 경보를 울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경보를 울립시다. 그리고 누군가 불 끄는 데 손을 보태기를 희망합시다. 그런 점에서 이 방에 있는 모두는 경보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길을 본 사람들입니다. (120쪽)

- 사람들은 때로 제가 좀 지나치다고 합니다. “저기, 마거릿.” 그들이 말합니다. “그런 말은 좀 너무하지 않아요?” (…) 누구나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아무 일도 없고, 세상은 안전하며, 우린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아무것도 아무의 잘못도 아니야. 무엇보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해요. 아무 걱정 없이, 또는 라이프스타일을 조금도 바꿀 필요 없이, 우리 좋을 대로 계속 지금처럼 살아도 무방해. 그래도 나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저도 그런 말을 듣고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지금은 좀 가혹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112쪽)

우리 시대 가장 치열한 ‘작가’이자 ‘독자’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위대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
“제 대답은 ‘언제나 희망은 있죠’입니다.”

애트우드는 지난 20년간 청탁받은 원고의 90퍼센트를 거절하고도 매년 40편의 에세이를 썼다고 한다. 그 800여 편의 글 가운데 60여 편이 이 책에 실렸다. 이 책엔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위대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압축돼 있다.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이자 독자가 21세기를 돌파하며 세계에 던진 ‘타오르는(급박한) 질문들’과 그 대답들을 이 책으로 만나보자.

- 제가 1960년대에 처음 청중과 질의응답 세션을 갖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언제 자살할 생각이세요?” 저는 여성 시인이었고, 실비아 플라스의 망령이 아직 떠돌던 시대였고 자살이 필수로 여겨졌습니다. 여권운동 초기에는 이런 질문이 왔습니다. “남자들을 증오하세요?” 1980년대가 되자 사람들이 글쓰기 과정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이후에는 《시녀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여성의 신체를 관리하는 정책에 대해 제가 정곡을 좀 세게 찌른 모양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질문이 들어옵니다. “희망이 있나요?” 제 대답은 “언제나 희망은 있죠”입니다. 희망은 내장형입니다. 그리고 잘 옮습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더 많아집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좀비의 진정한 의미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 다만 희망을 뺀 우리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에게 희망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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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소설가, 시인, 에세이스트, 문학비평가. 1939년 11월 18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났다. 시집 《서클 게임(The Circle Game)》(1964)과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1969)로 이름을 알린 이래, 장르를 뛰어넘는 빼어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대표작으로 소설 《시녀 이야기》 《고양이 눈》 《도둑 신부》 《그레이스》와 ‘미친 아담’ 3부작 등이 있으며, 《눈먼 암살자》(2000)와 《증언들》(2019)로 두 차례 부커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아서 C. 클라크상, 프란츠 카프카상, 독일도서전 평화상, 미국PEN협회 평생공로상, 데이턴 문학평화상 등을 수상했고,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화가, 일러스트 작가, 오페라 작사가, 극작가, 인형극 공연자로도 활동한 애트우드는 현존하는 가장 치열한 작가이자 독자로서 ‘타오르는 질문들’을 세계에 던지고 또 답하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

옮긴이 이재경
“매일 언어의 국경에서 텍스트가 건널 다리를 짓고 그림자처럼 참호 속에 숨습니다.” 서강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경영컨설턴트와 출판 편집자를 거친 월급쟁이 생활을 뒤로하고, 2010년 전업 번역가가 됐다. 번역가는 생각한 만큼, 겪은 만큼, 느낀 만큼 번역한다. 자기객관화와 감정이입에 동시에 능해야 한다. 그간의 내 이력이 밑천이요, 비전공자로 산 세월이 저력이었다. 어느덧 번역이 가장 오래 몸담은 직업이 됐다. 밑천이 바닥날까봐 번역가의 참호 안팎에서 틈틈이 소소한 모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기서 얻은 발상과 연상을 기록한다. 산문집 『젤다』, 시집 『고양이』,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를 엮고 옮겼고, 『편견의 이유』 『쓴다면 재미있게』 『깨어난 장미 인형들』 『민주주의는 없다』 『바이 디자인』 『소고기를 위한 변론』 『가치관의 탄생』 『셜로키언』 『뮬, 마약 운반 이야기』 등 5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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